19 December 2023, Mums’ Prayer Room

This is a part of the 40-Day Prayer Series for KRCN Middle-High School Class mothers in preparation for their children’s retreat planned for 12-14 January 2024. The reflection and prayer are recorded in Korean.

Day 17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The afflictions of the righteous are many,
But the Lord rescues him from them all. (NASB2020)

시편 34:19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But now faith, hope, and love remain,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NASB2020)

고린도전서 13:13

Transcript

안녕하세요. 오늘은 12월 19일 화요일 기도 17일째 이고 지금 시각은 5시 15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부슬부슬 오고 있는데요, 오늘 읽어 드릴 말씀은 그린도 전서 13장 13 절과 시편 34 편 19 절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고린도전서 13장 13 절은 참 알쏭달쏭한 말씀 베스트 텐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봐왔지만, (한) 절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전에, 전후에 어떤 문맥인지 살피는 게 참 세상 중요하죠.  13장 13 절은 앞에,  8 절부터 시작되는 에필로그, 사랑에 대한 에필로그의 마지막 컨클루션conclusion인데, 8 절에는 그 사랑, 가장 좋은 길,  그 사랑은 끝이 없지만 겉으로만 나타나는 은사들은 끝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끝이 없다.  그리고 9절과 10절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은사들은 부분적이다. 하지만 사랑은 온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온전한 것이 온다.

11일 절에는 겉으로 나는 드러나는 은사는 아무리 화려해 보이고, 흠모할 만하여도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유치하고 미숙한 것이다.  그에 비해서 사랑은 장성하고 성숙한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도 나타나는 것은, 현재의 것은, 희미하지만 은사로서의 사랑은 확실한 것이다. 클리어clear한 것이고, 현재는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온전한 것이 올 때, 사랑이 다 이루어졌을 때, 그때 우리는 파이널final, 모든 것을 확실하게 다, 끝까지 다 알게 될 것이다 – 이런 것을 종합해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세 단어로 축약을 했어요. 믿음은, 맨 앞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라고 말할 때 믿음이 있었고, 소망은 또 중간에 ‘모든 것을 바라며’ 할 때 소망이 있었고, 그리고 사랑은 계속 나왔었고요.

근데 믿음 소망 사랑을 어떤 철학적이나 도덕적, 이상적인 퀄리티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 우열을 가릴 수가 없죠.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이라고, 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할 때 그 중에 ‘제일’이라는 표현을 일부러 쓴 것은 13장을 시작하기 전에 12장에, 전에도 말했듯이, 이 사랑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그 인트로덕션 introduction으로 우리를 다시 우리의 어텐션attention을, 우리의 주의를, 돌리고 있는 것이죠. 가장 좋은 은사를 소개하겠다는, ‘가장 좋은 길’로서의 사랑이고, 12장 3 절에서 말했던 ‘예수를 주라 고백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우리에게 항상 있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에 마음에 품으신 그때, 우리에 대한 생각을 품으신 때부터 그 생각을 바꾸시지 아니하시고, 시간 속에서 그것을 행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시고 이제는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 또 우리 안에 함께 사셔서 ‘과연 예수가 주이시구나’. 그 뜻은 –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신 일이 맞고, 참으로 날 구하셨다. 내가 그 수혜자다, 내가 거기에 은택을 입었다 – 하는 고백이 ‘예수가 주’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모든 것,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은사의 포인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는 일이다. 고린도전서의 전체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를 잘 믿게 하는 것으로 자기를 드러내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자기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신 사람을 구약에서는 ‘의인’이라고 하죠. 그렇게 세움을 받은 사람 의인. 영어 표현에 보면 라이쳐스righteous, 라이트right 한 사람. ‘옳다’라는 표현도 있지만, 업라이트 upright한, 곧다, 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사랑이 ‘세운다’, ‘빌드업 build up 하는 것이다’ 하는 그 개념과 의인이라는 뜻은 사실 그 결과물이 되는 것이죠. 의인, 라이트right, 업라이트 upright한 사람. 그 의인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오늘 특히 34 편 19에서는 고난이 많다고 말합니다.

왜 의인이 고난이 많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사랑의, 하나님의 그 사랑의 퀄리티와 상반되는 그것이 계속 있고, 또 세상에도 분명히 당연히 그 사랑과 반대되는 퀄리티들, 또. 다른 사람 안에,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상충되는 것들과 항상 부닥치고 갈등하기 때문에 그 의인에게 고난인거죠. 눈에 보이는 그 현실들, 아직도 존재하는 그런 상황들. 내 안에 있는 것들과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그 메시지, 내가 너를 구했고 내가 완전히 구할 것이다, 완전히 끝까지 너를 놓지 않고 구할 것이다, 그것을 믿고 가는 게, 그 자체가 고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도의 고난, 의인의 고난은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닌, 쓸데없는 것이 아닌, 온전히 세워지는 것으로 가는, 그런 목적이 있고, 그런 사용되는 쓸데가 확실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난에서 확실히 건지실 것이고, 그 갈등과 괴로움에서  그 혼돈에서 확실히 건지셔서 마른 땅의 평지 위에 우뚝 서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챌린지 challenge가 있죠. 도전이 있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렇게 완벽하게 사랑의 모습을 완전하게 보이실 거라는, 그런 것을 믿는, 믿고 가는, 소망하는 것 – 그것이 챌린지이지만, 사실 더 (challenging) 한 것은 그냥 ‘언젠가 되겠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움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예수와 성령님을 통하셔서 세워가심에 우리도 동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 어떤 사람, 내 자녀라고 할 때, 내 자녀 또는 이제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 어떤 우리 교회 일원 이 세워져 가는데 내가 일조를 하는 것이죠. 그게 우리의 탤런트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우리의 은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에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저 사람, 이 아이, 내 아이를 세우셨고, 이미 세우셨고, 세우고 계시고, 앞으로도 그리 하실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그래서 그런 세움을 할 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 ‘야 네가 크리스찬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것은, 생각이나 말은, 절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어저께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말씀드렸는데, 이 고민에도 ‘언젠간 되겠지’라고 ‘그냥 참자’ 하고 있는 것만이 상책이 아닌, 그 아이들을 제대로 세워 가시는데 내가 동참을 한다면, 무언가 말이나 액션을 취해야 되는 것이죠. ‘네가, 너희들이 크리스찬으로서 어떻게, 예배 시간에,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생활이 그럴 수 있어?’ 라고 하면 절대로 안 되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 마지막 때의 완전한 모습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하는 것이 – 그게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내가 너의 진심, 하나님을 향한, 교회를 향한 진심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너의 하나님을 향한, 교회를 향한 마음은 진심인 것을 내가 안다. 하지만  그 진심이 잘 못 나타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니냐? 그 진심이, 너의 진심이, 좀 더 잘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먼저 기도하시고, 내 나의 말과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시고, 아이들의 반응도 아이들의 마음도 준비시켜 주시라고 기도하시고. 이번 주에  한번 그렇게 해보시면 어떨까… 하고 제가 챌린지challenge를 드립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누구 누구 형이, 누구 집 아들이 더 심해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게 할 거니까,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기를 권유합니다.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가 기도하면서 그 열매를 보는 그 맛을 보면서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튼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어머니들, 선생님들, 그 중에 가장 좋은 은사, 가장 좋은 길, 예수를 주로 시인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오늘도 우리를 세우십니다. 이 사랑에 힘입으신 오늘이 되기를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이 세우심은 사랑이라고 표현할 만큼 부드럽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우리에게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지만, 그 반면에 무엇보다 강하고, 무엇보다 세고, 죽은 데에서 예수를 부활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사랑을 힘입어서 서로를, 우리 아이들을, 자신을, 가장 가까운 사람을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이 현재에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 현재가 아주 확실한 것이라고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우리를 매일매일 속이고, 또 그런 우리를 고발하고,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완벽한, 가장 완벽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클리어한  그때를 사모하고 바라며, 그 하나님의 사랑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게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셨고, 우리 아이를, 선생님들을, 동료들을 세우셨고, 세우고 계시고 앞으로 완벽하게 세우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그것이 흔들리고 동요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세우고, 서로를 도전하며, 서로를 북돋우고, 서로를 서로 예수 잘 믿게 하는 우리가 되게, 우리 교회가 되게, 중고등부가 되게, 청년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 시작이 오늘이 되고, 그 사랑의 은혜받는 날이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