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a part of the 40-Day Prayer Series for KRCN Middle-High School Class mothers in preparation for their children’s retreat planned for 12-14 January 2024. The reflection and prayer are recorded in Korean.
Day 23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He brought me up out of the pit of destruction, out of the mud;
And He set my feet on a rock, making my footsteps firm.You, Lord, will not withhold Your compassion from me;
시편 40:2, 11
Your mercy and Your truth will continually watch over me. (NASB2020)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Arise and go,
미가 2:10
For this is no place of rest
Because of the uncleanness that brings on destruction,
A painful destruction. (NASB2020)
Transcript
안녕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오늘은 12월 25일 성탄절 월요일 기도 23일째입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성탄절 설교 말씀 본문, 미가서 설교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는 미가서 2장 10절 말씀과 시편40 편 2 절 11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 즉 반드시 멸하니리 그 멸망이 크리라.
그리고 시편 말씀은요, 나를 기가 막힐 엉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히 하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아멘
지금 대강절을 통해서 계속 우리가 미가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예언을 계속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히 그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반드시 멸하실 것이라고 그리고 그 멸망이 완전히 클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painful destruction아주 고통이 클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과 멸망이 예수의 탄생이라고 이어 본다면 그 결국은 그것은 기쁨이고 우리에게는 위안이고 위로 평안일텐데.
멸망이 크고 그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까지 얘기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좀 추상적으로 들리고 상징적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구별하시려는 반드시, 그리고 크게 고통스럽게 멸하시려는 그 악이, 우리가 어찌할지 모르고 다 알 수도 없는 그 악. 고린도전서의 말로 하면 서로 세우지 못하고 교만해야 하고 서로 무너뜨리려 하고 억누르려고 하는 이 악이라면 그리고 이 악을 아주 원천적으로 하나님께서 멸하시라는 것이라면 우리가 왜 애곡하고 두려워하고 떨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악’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그 악의 둥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무리 선한 것을 해도 악한 동기가 있고 이기적인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새벽 기도를 해도 그것이 악한 동기로 이루어지고 성경 공부를 해도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 악을 멸하러 오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기뻐 뛰며 즐거워할 반가워할 소식만은 아닌 것이 그 악을 멸하시는 것이 마치 나를 죽이시는 것 같이 두렵고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 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술을 하려고 메스를 가지고 내 몸을 자르고 열고 하는 것처럼, 그런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 이 나한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것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일을 잘라내고 cut off해서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낯선 곳에 두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고 멸망입니다. 오늘 미가서 2장 10절에는 그러한 심판을, 여기는, 그것은, 이런 행태는, 너희의 그 익숙함이란, 너희가 추구하는 바란, 거기는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다. 너희의 resting place가 아니다. 너희가 안주해야 할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나라. 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가 참 편한데 내가 여기 익숙해졌는데 어, 내가 서로 세우지 않고 나만 위해 살고, 악하던 이기적이던 상관없이 내가 추구하고 내가 편하고 내가 익숙하고 내가 거기서 최고인, 내가 대장인 그 상태. 상관하지 마 나 여기 그냥 있을 거야. 나 잘나가는데 왜 그래? 나 나름 여기서 편해 이게 그냥 내 생각이야 이게 내 주관이야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반드시 떠나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불편함을 가져오고 낯설고, 나를 당황하게 하는 그런 일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반드시 해야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나는 아, 그냥 내비두세요. 상관하지 마세요, 나랑 상관, 나 안 세워도 되니까, 나한테 그렇게 하지 마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고 싶은 거죠.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자기가 직접 오셔서 그 악의 행태에 대한 심판을 자기가 받으시면서 우리 안에 있는 악을 같이 제하여 버리시는 거죠
그 진노를 그 악에 대한 그 참담한 악에 대한 진노를 자기 위로 받으셨고 우리 안에 있는 악을 꺼내시고 멸하시는데, 우리는 마치, 마치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메스로 여시는 것을 아프고 왜 이러시냐고 길길이 뛰고 고통하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시편에서도 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 나를 항상 보호하실 인자와 은혜와 진리는, ‘어, 그래 너 아프니? 나 그만할게. 너 무섭지? 나 스톱할게’ 가 아니라 이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반대와 프로테스트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진행하시는 것. 나를 완전한 나로 세워 가시고 데려가시는 것, 이것이 은혜와 진리입니다. 이것이 고린도 전서에서 말하는 사랑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사랑입니다.
이런 프로세스 이런 것을 거쳐서 여기에서 나온 성도가 뒤를 돌아보면서 말하는 것이 ‘아 참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건지셨구나’ 하는 감탄입니다. 나는 그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이 내가 있을 곳인 줄 알고 내가 쉴 곳인 줄 알고 거기에 있었는데 거기에 계속 있을 뻔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인자와 진리를 베푸셔서 나를 강제로라도 억지로라도 끌고 나오셨다. 이것이 은혜와 진리입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할 때 인자와 진리 은혜와 진리가 항상 같이 간다는 걸 말씀드렸었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내가 ‘너무 두려워요 이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진행하심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 낯설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당황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이 진리가 우리 안에 넘치는 크리스마스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편하고 익숙한 것이, 그래서 내가 거기에서 내 나름대로 정리되었고 세워져 갔다고 생각하는 그 삶의 착각들 안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안주하고 싶었고 그런 모양이라도 대충 우뚝 서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고 거기에 서로 상관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굳이 그런 데까지 나의 생각을 다 무너뜨리시고 세우실 필요가 전혀 없다고 느꼈는데, 하나님 역시 하나님은 하나님이셔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천적으로 해결해 주셔야 되는지 아시고 이미 계획하셨고 우리가 모르고 잠자면서도 악을 꾀하는 그 상태. 선을 행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악을 추구하고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서 움직였던 것을 하나님은 제하시고 무너뜨리시고 심판하시고 멸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과 멸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아주 크고 완전한 멸망과 심판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이것이 너무 싫고 두렵고, 낯설고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데, 하나님 나한테 그냥 kind하시고 친절하시고 나를 예뻐해 주시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여시고 나를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 고통을 당하게 하시니, 이 하나님이 이러셔도 되는가 하며 내가 알지도 못한 때에 그렇게 컴플래인하고 불평하고 이를 갈고 울고 했던 것을 하나님 지금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저게 무슨 하나님이야 하는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응원하시며 힘을 주시고 두렵지만 우리가 이일 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고 이것을 겪고 이겨서 반석위에 두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며 그 걸음을 견고히 하시는 하나님께 나를 맡길 수 있음을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셨기에 하나님 이제는 내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그대로 편하게 있을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그 인자와 진리로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고 나를 항상 보호하심을 정말 믿고 따를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 긍휼이 내가 싫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그치지 아니하시고 이 심판과 멸망을 이루셔서 내 안에 있는 조금이라도 악하고 이기적이고 세우지 못함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그 그리스도의 몸 세우시는 일에 동참하고 거기에서 정말 은혜를 맛보며 정말 찬양해야 할 것, 정말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에 도구가 되는. 그런 일원이 되기를 그런 지체가 되기를 소원하고 바라며 이루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성탄에 주시는 오늘 들을 설교 말씀에 우리가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시고, 진정 나에게 그렇게 하고 계시도다 하고 고백하는 저희들 되고, 서로의 얼굴을 볼 때 ‘아 그래 너한테도 이러시지, 그래, 나한테도 이러셔’ 하면서 우리가 서로 용기 북돋고 여기 서로 붙어 있기를 서로 다시 한번 다짐하고 응원해 주는 저희 공동체, 교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 자녀들에게도 이것이 품어져 나오며 우리가 그래서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든 일터에서든 학교에서든 이것이 은은히,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되게 사모하고 나아가게 하시 옵소서. 우리에게 오셔서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우리에게 속히 오시고 항상 계시옵소서.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