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0.19 주일 설교 요약
시편 132은 다윗이 근심했던 자로서 “야곱의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친밀히 올리는 고백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다윗을 잘 아는 만큼, 그를 그럴 자격 없는 자로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처소를 향해 가지는 간절한 마음의 근거를 찾아보도록 종용받습니다. 우리아 사건(삼하 11장) 때문에 다윗의 간절한 말과 표현이 위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의 말보다는 오히려 그가 살인한 우리아가 하기에 적합한 말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자신이 조상 야곱의 서원(창 28장)에 서 있는 당사자로서 뒤돌아보며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 편에서 하신 약속을 다 이행하셨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신이 야곱 편의 서원을 지키는 일만이 남았고, 그 서원을 지켜 하나님의 성전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그에게 간절한 지를 호소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야곱의 전능자”로 부르는 것은 오해와 비난을 넘어, 하나님의 처소를 향한 사랑이 더 크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야곱의 서원을 실행한 다윗의 후손으로서 언약의 사랑에 빚진 자로, 우리의 도덕적인 옳고 그름에 그치지 않고, 그 보다 더 큰 예배와 그 처소를 사모하며 하나님과 친밀히 동거하는 삶을 누려야 겠습니다.
설교에서 들었던 아래 단락들을 다시 읽고 질문에 대한 생각들을 나눠봅시다.
“여호와의 처소, 곧 성막에 대한 다윗의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지요. 그것은 그에게 있는 여러 근심 중에서 가장 큰 근심이었고, 그로 하여금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기도제목이고, 탄원이자 하나님을 향한 어리광이었지요. 그래서 어쩌면 집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구약에도 하나님은 출애굽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같이 거하시기 위해 “장막”을 지으라고 하셨고(출 25) 신약에도 예수님이 오신 사실을 우리들 중에 “장막치셨다” 라고 표현합니다(요1). 그렇다면 다윗이 여호와의 처소 즉 성막에 그리도 집착하며 기도하고 탄원한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성막이란 하나님께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다윗에게 이 소원과 집착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진정으로 언약궤를 사랑하고, 또 다윗과 그 나라를 사랑한 헷사람 우리야는, 다윗에게 아내를 빼앗긴채, 다윗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늘, 그 언약궤를 찾겠다고 하고 있지요. 그것을 찾기 위해 침상에도 오르지 않겠다고!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한 자는 우리야였습니다. 언약궤를 위해서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밤을 지세웠지요.그런데 그러한 그를 죽인 다윗이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겠다고 서원합니다.”
2. 다윗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까지 하나님의 장막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표현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존재인 자신의 아내의 경멸을 받을 정도로 언약궤를 아이처럼 신나게 맞이하는 그의 춤사위를 생각나게 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왜 심오한 열망이나 격정적인 기쁨의 순간에 자신의 치부를 굳이 드러내며 그것을 표현할까요? 이런 표현 방식은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거리낌 또는 도움이 될 수 있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러한 오해와 배신과 미움과 반역보다, 하나님의 처소를 향한 그의 사랑이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그 진심을 알아주십사고, 시편에 그 하나님을 향하여 다른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전능자”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은 이것이 자기 조상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던 일이며, 그의 자손된 자로서 마땅히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무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뭐라하든 말든”
3.다윗과 같은 극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를 볼 때 또는 나 자신을 볼 때에도 이런 사람이 성도라고 할 수 있나? 하는 물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도덕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성도됨이 더 위에 있는 기준이라고 인정할 수 있나요? 그런 인정을 하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나요?
오늘 나눈 말씀을 생각하며 아래 시편을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 가소서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찌어다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시편 13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