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세무원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사람이 죄인들을 환영하고 함께 음식까지 먹는다” 하고 투덜댔다. 3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너희 중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5 그러다가 찾으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6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합시다. 잃은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7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사람 아흔아홉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
누가복음 15장
예수님은 14장 끝에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14:27)”고 하시고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까? (14:34)” 물으셨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는 다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는 것이 되겠죠.
이렇게 부담이 큰 말씀들을 전하고 나서 누가는 15장에 비유 시리즈 3개를 나열합니다. 오늘 말씀인 잃어버린 양 한마리, 그리고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우리 마음을 울렸던 잃어버린 아들의 이야기까지. 세 이야기에서 모두 예수님은 찾은 한 마리 양, 동전 하나, 아들 한 명으로 잔치하시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그 잃었다가 찾아진 한 마리 양으로서 우리 안에서 다시 다른 양들과 살아가야 하는 것, 집을 나갔었던 전적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나를 찾아 헤메도록 고생시킨 그 한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집을 나가야만 했었던 그 습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7번씩 70번을 용서하신 대상이 되고, 겨자씨 만한 믿음을 마음에 심으셔서 나 대신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는 일이 있게 한 그 사랑 받는 장본인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사람 아흔아홉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여야 하늘에 기쁨이 넘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어떤 다짐보다도 어쩌면 회개란 잃어버린 우리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발견되고 그런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목자는 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서 떠났을까요? 다른 99양이 있으니 한 마리 쯤 잃어버리는 것은 괜찮지 않았을까요?
- 목자는 양을 찾은 다음 어떻게 했나요?
- 하늘에서는 어떤 일로 기뻐한다고 하시나요?
- 그럼 “회개”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잃어버렸던 우리를 다시 찾으셔서 하나님의 집에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꾸 하나님을 떠나 나가려던 습성을 이제 버리고 하나님만을 따라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99마리의 다른 양을 두고도 나를 찾아내시고 잔치하신 것을 잊지 않게 도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