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2.22 주일 설교 요약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시대에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선다 해도”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실 만큼, 유다를 향한 심판을 확정하셨고 그 이유를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에서 찾으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 무엇을 고치고 회개하면 상황이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일말의 기회조차 열려 있지 않음을 강조하며, 엎지러진 물 앞에서 남는 것은 오직 두려움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일뿐임을 드러냅니다. 특히 므낫세의 악이 더 무섭게 규정되는 까닭은, 그가 ‘헵시바(여호와의 기쁨)’의 아들이며 약속의 땅의 왕, 곧 은혜를 알고 누린 자리에서 배반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 배반은 단순한 우상숭배의 실수라기보다, 성도라 일컫는 자가 다시 점을 치고 기복으로 돌아갈 때처럼,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고”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경고를 받을 만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형태의 미신적 기복주의는 언약의 피를 모독하는 심각한 배신이며, 성도는 이 두려운 경고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경계해야 합니다.
1. 먼저 이번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좋았던 것과 힘들었던 것을 돌아가면서 나누어 보세요.
2. 성경 본문과 위의 설교 요약을 읽어보세요.
3. 설교 중 특히 아래 단락들에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보세요.
[12]우상숭배는 죄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박수무당을 데려다가 점을 치게 하는 것도 죄이지요. 그러나, 그래도 회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게, 이때까지 교회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했다는 것이지요.
[13]그러나 헵시바의 아들 므낫세가 그랬다는 건, 좀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다?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단호하신 이유는, 주홍색의 죄, 혹 진홍색의 죄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런 죄를 지은 당사자가 누구냐에 달린 것입니다.
[14]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방인들이 이방에 살면서 알라를 믿든, 무신론자가 된다고 해서 구원받을 기회조차 박탈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랑 싸우느라 예수도 못믿고 죽었는데,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 주어지겠습니까? 형벌의 중함은, 그가 헵시바의 아들이라는데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성도로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우상 숭배’를 그대로, 또는 어느 일부분, 묵인하고 따라 간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가요? 내가 인지하고 있었거나, 또는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나는 ‘성도가 따라하는 우상 숭배’의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나눠봅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속에 여전히 살게 하셨는데 거기에서 오는 딜레마를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