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인내 | 시편 73 소그룹 공과

Raphael, The Miraculous Draft of Fishes, 1515

2026.2.1 주일 설교 요약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마음이 정결한 자’, 산상수훈의 말로 하면, ‘복 있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겉으로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현실의 현상들을 보며 실족할 뻔했던 그가, 성소에 들어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끝날에 대한 시선이 열리며 흔들리고 의심하던 마음에서 돌아섭니다. 하나님은 가라지와 알곡을 함께 자라게도 하시지만, 때가 되면 그물을 끌어올려 분별하시는 분이시니, 악인의 번영은 한때의 꿈과 같고 ‘복된’ 성도들의 고난과 괴로움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습니다. ‘복’이란 당장의 형편이나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끝날에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심을 알고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복된 자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여 오늘을 인내로 버틸 수 있습니다. 성도는 나의 눈에 감지되는 비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시기와 염려를 뒤로하고, 하나님께서 치밀히 계획하시며 일하심을 신뢰하며 알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27]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아삽은 그 그물에 남겠다는 소리지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것을 끌어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심판하실 때가 있음을 알리겠다는 소립니다. 성도의 인내가 여기에 있습니다(계 14:12).

문제 1. ‘복스럽다’, ‘복이 많다’,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관용구만 보아도 우리에게는 복을 좋아하고, 많을 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는 인식과 욕구가 깊이 내재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과 시편 73편에서는 복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22] 17절, 아삽이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때가지는 여전히 악인이 형통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가 있다는 말이지요.

문제 2. 성소에 들어갈 때에 깨달았다는 ‘악인들’의 종말이란 어떤 것인가요?


[15] 그런데 그 밭의 향취 속에서 아삽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까? 16절,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악취라는 것이지요. 거름 냄새! 이건 저 악인의 형통함 때문이 아니라, 그 형통함을 저 악인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햇볕을 가라지와 알곡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 때문이지요.

문제 3. 나를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정의의 사도로 만드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그에 대해 오늘 설교와 시편이 정의하고 있는 ‘복’이 해결 또는 도움이 되나요?


끝으로, 시편 73편(16-28절)을 읽으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설교 전문 PDF

구역 공과 프린트용 PDF

Discover more from Read with Ssam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